제1화 401호의 침묵
제1화 401호의 침묵
오순정은 이 빌라에서 십일 년째 관리소장을 맡고 있었다. 낡은 계단과 삐걱대는 현관문 소리까지 다 외울 정도로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401호 앞에 사흘째 쌓여가는 우편물만큼은 낯설었다.
"민서희씨, 요즘 통 안 보이네." 오순정이 우편함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택배 상자 세 개, 관리비 고지서 두 장, 그리고 뜯지 않은 등기우편 하나가 문 앞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3층에 새로 이사온 강지혜가 계단을 내려오다 그 광경을 보고 멈춰 섰다. "401호 아주머니요? 저도 요 며칠 인기척을 못 느꼈어요." 강지혜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오순정은 강지혜를 슬쩍 살폈다. 이사온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이웃집 사정을 이렇게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자주 마주쳤나봐요?" "아뇨, 그냥... 벽이 얇아서요."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문자에도 답이 없은 지 나흘째 되던 날, 오순정은 결국 관리사무소 열쇠를 챙겨 들었다. "이러다 무슨 일 생기면 내가 다 책임져야 돼. 문 열어봐야겠어."
강지혜가 따라나섰다.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왠지 불안해서요." 오순정은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함께라면 나중에 증인도 되고 나을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보다 먼저 서늘한 공기가 훅 끼쳤다. 신발장에는 여자 구두 두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거실 조명은 꺼진 채였다. 집안은 이상하리만치 정돈되어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선 오순정의 시선이 싱크대 아래 새로 놓인 기계에 멈췄다. 쿠쿠 에코웨일 건조분쇄 음식물처리기, 그레이스 화이트 색상의 매끈한 본체가 낯선 존재감을 뿜고 있었다. "이거... 언제 들여놓은 거지? 지난달 순찰 때는 없었는데."
강지혜가 다가와 기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새 제품 같은데요.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전선이 왜 벽 뒤로 숨겨져 있죠?" 오순정이 몸을 낮춰 확인하니 정말 전원 코드가 콘센트에서 나와 일부러 벽틈 사이로 밀어넣어져 있었다.
"보통은 그냥 늘어뜨려 쓰잖아요. 굳이 이렇게 감출 필요가 있나." 오순정의 목소리에 의문이 짙어졌다. 기계 표면에는 사용한 흔적이 뚜렷했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청결함도 함께 배어 있었다.
오순정이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안쪽 분쇄통은 텅 비어 있어야 정상인데, 바닥에 미세한 얼룩과 함께 반쯤 녹은 것 같은 작은 금속 조각이 걸려 있었다. "이게 뭐지... 음식물이 아닌 것 같은데."
강지혜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소장님, 저 그냥...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 그래요, 갑자기?" 오순정이 묻자 강지혜는 시선을 피하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냥... 남의 집이잖아요, 이러다 문제 생기면 어떡해요."
오순정은 그 반응이 걸렸다. 처음 문을 열자고 했을 때는 흔쾌히 따라나섰던 사람이,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빼려는 모양새였다. "강지혜씨, 혹시 민서희씨랑 아는 사이예요?" 질문에 강지혜는 대답 대신 서둘러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순정은 금속 조각을 휴지에 조심스레 감싸며 생각에 잠겼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지, 아니면 먼저 이 조각의 정체를 확인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집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사람이 남긴 것은 평범한 음식물 찌꺼기가 아니었다.
그날 밤, 오순정의 휴대폰으로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가 걸려왔다. 받자마자 끊긴 통화 기록을 확인하던 그녀는 문득 401호 우편함에 있던 등기우편의 발신인란을 떠올렸다. 강지혜와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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